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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주교도 ‘미투’ 침묵 깬 7년 악몽…“결코 잊을 수 없었다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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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익명 작성일 08-09 댓글 0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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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단독] 천주교도 ‘미투’ 침묵 깬 7년 악몽…“결코 잊을 수 없었다”

입력 2018.02.23 (21:01)수정 2018.02.23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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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인터뷰] 침묵해왔던 7년 전 악몽…“결코 잊을 수 없었다”

차별과 인권을 다루는 KBS 특별취재팀 앞으로 지난 15일 새벽 2시, 엄청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.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현직 신부로부터 오래 전 성폭력을 당했다는 한 천주교 신자의 고발 글이었다. 차분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글에서는 7년 전 고통이 선명하게 배어나왔다.

세례명이 소피아인 김민경 씨는 하루 전, KBS 기자들이 스스로 사내 성폭력 사례를 고발하며 #MeToo(미투-나도당했다)운동에 동참한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했다. 민경 씨가 2011년 4월부터 신부 3명과 다른 자원봉사자 1명 등 5명 함께 지냈던 아프리카 남수단에서의 생활은, 처음엔 고되고 보람찼지만 갈수록 지옥이 되어 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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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당에서 나오려고 하니까 어....문을 잠그고 못 나가게 막고 강간을 시도하셨죠. 그래서 음....제가 손목이 붙잡혔는데 저항하면서 제 손목을 빼다가 제 팔에 제 눈이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들고, 벗어나려고 (옆에 놓여져있던) 흉기를 집어들었어요. 그러니까 더 이상 가까이 오시진 않았지만 제가 사제를 찌를 순 없잖아요? 그래서 결국에는 내려놓고, (다른 사람들을 깨우려고) 헬맷으로 거울도 깨볼까 했는데 그마저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.

다음날 새벽 5시에 나왔어요. 온몸이 너무 욱신거려서 다음 날까지도 몸이 아팠어요. 그런데 그 다음날 제가 거기 있던 다른 후배 신부님들한테 피해 사실을 알렸고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어요. 왜냐면 그 분들도 거기서 살아야 됐고 그 선배 사제의 막강한 파워, 온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은 모든 걸 그 선배 사제한테 인수인계를 받아야 했고, 물어봐야 했고,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 분들이 저에게서 피해 사실을 듣고 “선배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” 말하기를 바랐다면 너무한 걸까요?

되풀이 된 악몽

가해자는 수원교구 소속 한00 신부다. 오늘(23일) 아침까지도 수원 광교의 한 성당에서 각종 미사를 집전하고 세례를 내려준 주임 신부였다. 그는 故이태석 신부의 뒤를 이어, 2008년부터 4년 동안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. KBS 다큐멘터리 <울지마 톤즈>에도 이태석 신부와 함께 등장하며 사목활동에 열심인 사제로 부각되기도 했다.

하지만 취재진이나 방문객이 모두 떠나고 사제단과 봉사자 등 5명만 남게 되면 또다시 한00 신부는 이성을 잃었다고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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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루는 그 사제가 창문 앞에서 계속 저를 불러댔는데 제가 못 들은 척 하고 자는 척을 했는데 열쇠도 아닌 아마도 클립 같은 거였던 것 같은데 그걸로 한참을 문을 흔들고 결국엔 문을 따서 방으로 들어왔어요. 그래서 제가 “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”고 그러니까, 저를 움직이지 못 하게 잡고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면서 했던 얘기가 “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.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” 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. 저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 좀 제발 나가달라고 했는데 나가지를 않아서 제가 먼저 제 방에서 나왔어요. 그러니까 그제서야 따라 나오시더라고요.

그렇게 내보내고 겨우 들어가서 ‘아 이제 문을 잠그는 것조차도 나한테는 의미가 없는 행동이고, 이 방조차도 나에게는 안전한 곳이 아니구나’ 그렇게 깨달았죠.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엔 어쨌거나 미안하다, 잘못했다, 용서해 달라 사죄를 하고 그래서 용서를 받아주고 화해를 하고 그러면 같은 일이 또 반복이 되는거죠.

잊으려고 너무 오래 노력을 했고 이미 6년 전 일이라 정확히 제가 몇 번 저한테 그런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회수 같은 건 기억하지 못 하지만, 제가 기억하기에 아주 자주 있었던 일이고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해요. 근데 기억나지 않아도 정확하게 기억나는 그 날짜, 일기에 적혀있는 사건 두 가지만 말씀드리는 거예요.

왜 소리치지 않았냐고요? ... "그럼 선교는 어떻게 해요?"

아무리 외딴 곳이라지만 분명 나머지 두 명의 신부와 다른 자원봉사자도 있는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? 사실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궁금했다. 그리고 이 부분이 미심쩍어 고발을 하겠다고 나선 김민경 씨의 진심을 조금은 의심했음을 고백한다. 그런데 그녀의 답변을 듣는 순간 맥이 탁- 풀리는 느낌이었다. '이런 대책 없는 신자를 봤나~'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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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고요한 수단에 그렇게 큰소리가 나면 제일 먼저 달려올 사람이 현지인, 와치맨이라고 불렸던 직원이고, 현지인 직원이 그런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 미션은 철수를 해야될 것 같았고. 사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와서 그 나라에서 그런 일을 벌어지는 걸 만약에 목격을 한다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? (‘선교를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겠다’ 이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?) 그렇죠, 네.

그런데 그 선교지(아프리카 수단)는 물론 그 사제가 초창기부터 엄청 고생하고 많은 일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, 그 사람 혼자서 이룬 선교지는 아니거든요. 어마어마한 신자들의 기도와 돈과 희생과 다른 사제 봉사자들의 노력이 있었는데. 제가 느끼기에는 나 하나 입 다물면 평화로운데 나 때문에 되게 힘든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.

그 당시에도 저는 되게 말하기가 무서웠던 거 같아요. 다리가 너무 후들거렸고, 혹시라도 제가 비난받을까봐 무서웠고,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할 수도 없었고.

저는 수단을 잊으려고 되게 많이 노력을 했어요. 그런데 제가 살면서 분노조절이 잘 안 되고 아니면 무기력, 우울, 그런 감정들이 저를 힘들게 할 때 그 원인이 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보면 그 사건들이 자꾸 떠오르는 거죠.

텔레비전에서 우연히 ‘미투 운동’을 보고 그날부터 한 1~2주 동안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예요. 그래서 내가 살아야겠다. 그래서 내 발로 처음으로 상담소를 찾아온 게 여기였어요.

제가 이걸 아직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어요. 이제 이거 촬영 끝나고 말씀드릴 생각인데,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될지 사실 잘 모르겠는데. 부모님이 상처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.

"저는 제 종교를 사랑해요"

"이걸 계기로 교회가 더 나아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"

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7년의 침묵을 깨고 나선 이유는 뭘까? 혹자는 남편이 있는 아내, 자녀가 있는 엄마가 된 이 시점에 부질없는 짓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. 하지만 김민경 씨는 바로 자신의 남편 덕분에, 그리고 자신의 딸을 위해서 카메라 앞에 섰다고 했다. 시종일관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그녀는 이 지점에서 감정의 격랑을 감추지 못 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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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가 언론에 제보를 했다는 얘기를 했을 때 교회 관계자들은 그러면 한국교회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텐데, 후원이 끊길 텐데, 그 미션을 철수해야 될 텐데 이런 것들을 걱정하시더라고요.

저는 그 미션이 철수하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. 그런데 교회 안에는 이런 문제들이 제가 알기로는 상당히 많아요. 그런데 신자들의 신앙심을 이용해서 묻힌 경우들이 많다고 생각하고. 아마 이게 방송이 되면 교회 안에서도 __처럼 터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.

제가 이걸 이제야 6년이 지나서 얘기하는 것도 ‘미투 운동’이 없었다면 아마 저도 무덤까지 갖고 갔을지 몰라요.

[단독] 천주교도 ‘미투’ 침묵 깬 7년 악몽…“결코 잊을 수 없었다” (kbs.co.kr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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